
경주를 대표하는 명소 중에서도 동궁과 월지는 신라의 예술과 자연미가 완벽히 어우러진 공간으로 손꼽힙니다. 이곳은 통일신라 문무왕 14년(674년)에 조성된 궁궐의 별궁으로, 신라 왕족이 연회를 즐기던 곳이었습니다. 본래 이름은 ‘월지(月池)’였지만, 연못에서 ‘안압지(雁鴨池, 기러기와 오리의 연못)’라는 이름으로 더 오래 불렸고, 1970년대 발굴 이후 본래의 명칭인 동궁과 월지로 복원되었습니다. 현재는 경주의 야경 명소로 자리 잡아, 낮에는 고요한 연못과 고전 건축미를 감상하고, 밤에는 조명 아래 물 위에 반사된 전각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연못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삼각형 구조로, 중앙의 작은 섬과 그 위에 세워진 전각이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이룹니다. 사계절 내내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특히 여름의 연꽃과 가을의 달빛이 어우러질 때 가장 장관을 이룹니다. 이번 글에서는 동궁과 월지의 역사와 관람 포인트, 그리고 밤과 낮의 다른 매력을 중심으로 안내드리겠습니다.
동궁과 월지의 역사와 관람 포인트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부속 궁궐이자, 손님 접대와 연회가 열리던 장소였습니다. 당시 신라인들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겼고, 연못의 형태와 건축 배치를 통해 미적 감각과 기술력을 함께 보여주었습니다. 연못의 면적은 약 15,000㎡, 가장 깊은 곳은 2.5m 정도이며, 동서 약 200m, 남북 약 180m 규모로 조성되었습니다. 연못 안에는 세 개의 작은 섬이 있고, 섬과 섬을 잇는 돌다리는 당시 신라인의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입니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이 정교하게 남아 있으며, 돌틈 사이에는 배수로와 배수관의 흔적이 보입니다.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금속공예품, 토기, 기와 조각들은 왕실의 수준 높은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이며,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시간대는 해질녘 이후로, 하늘빛이 남아 있는 시간에 전각 조명이 켜지면 연못에 반사된 건물과 하늘이 하나로 이어지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포토존은 주 입구 방향의 정면 데크와 중앙섬 근처 전망대, 그리고 서쪽 석축 위쪽 구간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바람이 잦은 날에는 물결이 잔잔하여 건물의 반영이 선명하게 잡히므로, 야경 촬영에 이상적입니다. 연못 주변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약 30~40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습니다. 낮에는 푸른 하늘과 전각의 조화를, 밤에는 조명 아래 달빛이 비치는 수면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밤과 낮이 만들어내는 두 가지 풍경
낮의 동궁과 월지는 고요하고 단정합니다. 햇살이 전각의 기와 위로 내려앉고, 물 위에는 하얀 구름이 떠 있습니다. 연못 주변의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물 위에 비친 하늘이 움직이며 마치 두 개의 세계를 걷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여름철에는 연못 위로 연꽃이 피어나기 시작해, 초록잎 사이로 연분홍 꽃잎이 물결에 비칩니다. 이때 연꽃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물빛이 일렁이며, 신라의 미학이 살아 있는 듯한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물 위로 흘러내리고, 겨울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또 다른 고요함을 선사합니다. 밤이 되면 풍경은 전혀 달라집니다. 전각의 조명이 켜지고, 연못 위에 그 빛이 반사되면서 실제보다 두 배의 공간이 펼쳐집니다. 황금빛 불빛이 석축을 타고 흐르고, 조용한 음악이 배경처럼 깔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야경 감상의 하이라이트는 ‘전각 반사 구간’입니다. 이 구간은 물결이 고요하여 전각의 조명과 달빛이 완벽히 대칭으로 비치는 구간으로, 많은 사진가들이 찾는 명소입니다. 달이 뜨는 날에는 달빛과 전각의 불빛이 함께 반사되어 물 위에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듯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이 때문에 동궁과 월지는 ‘신라의 달빛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의미로 불리며, 경주의 대표 야경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관람 시에는 삼각대 없이도 충분히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물 위 조명은 20분 단위로 색이 미세하게 변해 다양한 톤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조명이 꺼지기 전인 밤 9시~10시 사이는 인파가 줄어 조용히 감상하기 좋은 시간입니다.
시간이 머무는 연못, 신라의 달빛을 걷다
경주 동궁과 월지는 천년의 시간이 고요히 흐르는 장소입니다. 이곳의 매력은 화려함보다 ‘고요한 감동’에 있습니다. 물 위에 비친 빛은 실제의 풍경이지만, 동시에 과거의 기억을 비추는 거울 같기도 합니다. 연못가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전각의 반영은 단순한 야경이 아니라, 천년 전 신라인이 보았던 달빛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낮에는 자연의 소리와 햇살이, 밤에는 불빛과 바람이 어우러져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여행자는 이곳에서 발걸음을 늦추며, 조용히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하루의 끝에 연못 위로 달빛이 비추는 그 순간, 경주의 모든 풍경은 한 장의 그림이 됩니다. 이곳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닌, 시간과 감정이 머무는 ‘신라의 마음’이 깃든 공간입니다. 경주 동궁과 월지 — 그곳에서 만나는 빛의 시간은 언제나 같은 듯, 늘 새롭습니다.